강화도조약 (조. 일 수호 조규)의 체결(1876)
일본 군함 운요호가 강화도에 접근하여 무력시위를 하였고 초지진과 영종도를 공격하자 조선군이 방어를 위해 경고사격을 하였는데 이를 빌미 삼아 정부에 개항 요구를 하게 되었다. 조선의 신헌과 일본의 대표 구로다가 강화도에서 조약을 하였고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조약이라고 할 수 있다. 내용으로는 조선이 자주국임을 명시하고 부산 외 2개 항구를 개항하며 조선 해안에 대한 측량권과 치외법권을 인정하게 되어 일본의 조선침략을 마련하게 된다
강화도조약의 부속조약으로
조. 일 수호 부록이 있으며 개항장에서 일본의 화폐 유통을 허용하며 일본 교관의 여행 허용, 일본 상인의 활동범위 설정 등을 규정(간행 이정 10리 무역)을 하였다
조. 일 무역규칙으로는 양곡(쌀, 잡곡)등을 무제한으로 수출입을 허용하여 양곡의 유출이 일어났으며 무관세 설정을 하였다
이후 1883년 조.일통상장정으로는 일본 상품에 대한 최소한의 관세와 최혜국 예우를 하였으며 방곡령을 규정하여 곡물의 수출을 금하려는 노력을 하였다 (방곡령: 시행 1개월 전 지방관이 일본영사관에 통보=>잘 지켜지지 않음)
조. 미 수호통상조약(1882)은 2차 수신사로 파견된 김홍집의 조선책략(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체결되었고 거중조절로 양국중 한나라가 위협을 받으면 서로 도우며 낮은 비율의 관세 (최초로 관세권 인정), 조선이 서양 국가와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이며 외국에 대한 최혜국대우를 처음으로 규정하였다
결과로 사절단인 전권대신 민영익을 보빙사로 미국에 파견하였고 이어 영국, 러시아, 프랑스등 다른 서구 열강과도 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조. 프 수호통상조약-1886 천주교 자유)
수신사 - 1차 김기수- 일본의 신식기관과 근대 시설 시찰 2차- 김홍집 - 조선책략 3차 임오군란의 결과 박영효 김옥균이 파견되었고 개화 반대 여론으로 인해 암행어사의 형태로 비밀리에 파견된 조사 시찰단이 있다
영신사는 청의 근대무기 제조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김윤식 단장을 청으로 파견하였고 기기국에서 무기 제조기술을 배워 온 후 근대 무기 제조공장인 기기창을 설립하게 된다(1881)
보빙사는 미국으로 전권대신 홍영익, 민영익, 서광범으로 구성하여 미국대통령 아서를 알현 여러 문물을 시찰하였다
개항 이후의 개화 정책으로는 초기에는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여 개화 정책을 총괄하게 되었으며 소속 부서는 12사로 통상, 군사 등의 개화 업무를 분담하였으며 5 군영 축소로 무위병(궁궐 방위) 장어영(수도방위)으로 2 영으로 축소를 하였으며 별기군을 창설하여 신식 군대는 별기군을 창설하게 되었다 (일본식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는 임오군란이 일어나는 계기가 된다)
1860 - 이양선출몰 | 1870 - 강화도조약 | 1880 - 조선책략,임오군란 | 1890 | |
개화파->북학파->실학 | 주화론 | 통상개화론 (박규수,오경석) | -온건개화파-김홍집(친청 | 애국계몽 |
위정척사파-성리학(충청도 지역의 노론세력) | -이항로, 기정진 | 최익현 | 미국과의 수교반대 | 의병 |
강화도조약으로 인해 일본이 조선에 대한 청의 종주권배제를 의도 반영하여 결국에는 국권침탈까지 하게 되는 첫 발판으로 삼았으며 부산 외 2개 항구로 부산은 일본 원산은 러시아를 견제 그리고 인천은 청나라를 견제하기 위한 의도로 시작되었고 개항 이후의 개화 정책은 위정척사파와 개화파로 나뉘어서 혼돈의 개항기를 지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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