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오군란(1882)은 구식 군인들이 신식 군대인 별기군과 차별대우를 받아 불만이 쌓이게 되고 강화도조약 이후 일본은 조선에 대한 경제적 침탈을 강화하게 되어 일본의 쌀 유출로 인해 쌀값이 폭등하자 하층민의 반일 감정이 커지게 되는 상황이었어요.
구식 군인들의 급료가 밀려있는 상태이고 급료로 쌀이 지급이 되었는데 쌀 속에 겨와 모래가 섞여있자 구식 군인들이 선혜청과 일본공사관을 습격하고 별기군의 일본인 교관을 살해하면서 임오군란이 시작이 됩니다.
이후 구식군인은 도시 하층민들과 합쳐지게 되고 민 씨 정권을 축출하기 위해 궁궐을 습격하게 되지만 민비는 충주로 피신을 하게 되며 갈 곳 없는 군인들은 흥선대원군에게 달려가서 집권을 요구하게 되며 흥선대원군은 다시 군란을 진정시킨다는 이유로 집권을 하게 됩니다. 집권 이후 2 영을 폐지하고 5 군영을 부활시키며 통리기무아문과 별기군을 폐지하는 등 각종 개화 정책을 중단하게 돼요
하지만 도망간 민비와 민 씨 정권 세력은 청에게 도움 요청을 하는데 청의 군대가 흥선대원군을 청나라로 압송하고 군란을 제압하게 되어 사태가 종결되게 됩니다
이 임오군란과 청의 개입으로 인한 결과로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서는 조. 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이라는 조약을 맺게 되는데 이 내용은 조선은 청나라의 종속국으로 인정하며 청나라 상인의 내지 통상권(항구 근처가 아닌 내륙으로도 이동할 수 있게 되는 권리)을 최초로 규정하였으며 치외법권까지 규정하게 되고 그 결과 개항장 객주의 활동이 위축되고 청. 일본 상인들의 상권경쟁이 심해지자 시전 상인들이 가게 영업을 하지 않음으로써 항거하였으나 별 소용이 없었어요
이후로 청이 내정간섭을 하게 되는데 정치적으로는 마젠창(내정 고문), 독일인 뭴렌도르프(외교고문)을 고문으로 두었으며 군사적으로는 청나라 장군인 위안스카이가 지휘하는 군대를 조선에 상주시키게 됩니다
일본 또한 최혜국대우로 청의 내지 통상권을 가져오게 되며 임오군란 때 피해를 받은 배상금을 일본 정부에 지불하고 일본공사관과 일본 경비병이 주둔하는 것을 인정하는 제물포조약을 맺게 됩니다
이후 사죄의 뜻으로 일본에 3차 수신사를 파견하게 되고 조. 일 수호 조규 속 약 체결로 일본 상인의 내륙 진출을 허용하게 됩니다.
이후 갑신정변은(1884) 급진 개화파가 추진한 정책의 실패와 청의 간섭 그리고 민 씨 정권이 견제로 개화 정책이 지체가 되고 있는 시점에 청과 프랑스가 전쟁으로 조선에 주둔하던 청의 군대가 베트남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때 급진 개화파에서는 일본공사에게 정변 지원을 약속받습니다.
개화당(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의 급진 개화파)이 정부가 근대적인 우편업무를 실시하기 위해 세운 관청인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에서 정변을 일으킨 후 고종과 왕후의 거처를 경우궁으로 옮기게 됩니다
민 씨 정권의 주요 인물들을 살해하고 개화당 정부를 수립하게 되는데
근대화 개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14개 조 혁신 정강을 발표하며 내용은 청에 대한 조공과 허례를 폐지하며 인민 평등을 바탕으로 능력에 따라 관리를 등용하는 점, 입헌군주제를 실시한다는 내용이며 개항 이후 상업활동에 어려움을 겪던 보부상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기관인 혜상공국을 혁파하여 특권적인 상업을 폐지하고자 하며 국가의 모든 재정을 호조에서 관할한다는 내용을 가지고 있으나 정변은 일본의 배신과 청의 군사개입으로 3일 만에 정변이 종결되게 됩니다.
결과로 일본공사관 신축비용을 부담하는 한성조약을 맺고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에서 군대를 모두 철수하며, 조선 파병 시 상대국에게 알리는 톈진 조약을 맺게 됩니다
갑신정변 이후로는 청과 일본이 조선을 둘러싼 이권 침탈을 경쟁하며 정치적, 경제적 대립이 심화되며 조선이 청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와 교섭을 시도하자 영군군이 러시아의 남하 견제를 구실로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하게 됩니다(1885~1887)
이렇게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경쟁이 심화되자 유길준과 독일 부영사 부들러가 한반도 중립화론을 주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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