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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story

흥선대원군의 개혁과 외세의 침입

by yhh 2021.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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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에 들어가면 개항기와 일제강점기로 나뉘게 됩니다. 먼저 흥선대원군에 대해 알아보자면 흥선대원군의 개혁으로는

세도정치의 중심 안동김씨를 밀어내고, 비변사의 축소 그리고 폐지를 하게 됩니다 또한 의정부와 삼군부의 기능을 회복하고 통치체계를 정비하기 위해 대전회통 육전조례등의 법전을 편찬합니다

 

이런 개혁적인부분이외에도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고자 임진왜란 이후 소실된 경복궁을 중건하게 되는데 여기서 궁궐의 공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당백전을 발행하며 기부금형식으로 내는 원납전을 강제징수하게 됩니다 이로인해 백성들의 원성이 극대화가 되었으며 지방양반의 거점이자 백성을 수탈하는 서원을 국가의 통제력을 강화하고자 폐지하게 됩니다. 전국 서원을 47개로 정리를 하며 명나라의 황제의 묘인 만동묘를 철폐시키게 되고 양반유생들의 반발로 최익현은 흥선대원군의 철폐를 비판하며 고종의 친정을 요구하는 계유상소를 올리게 됩니다 (1873)

 

국내적으로는 왕권강화정책(서원폐지, 경복궁재건)이 있고 민생안정정책으로는 삼정의 개혁으로 양전사업으로 은결색출 불법토지 겸병을 금지하였으며 호포제를 실시하여 신분의 구별없이 집집마다 군포를 양반을 포함하여 징수하였으며 환곡의 폐단을 바로잡고자 환곡대신 향촌민들이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사창제를 실시하였습니다

 

국외적으로는 통상수교거부정책(쇄국정책)을 실시하였고 전개를 하면 (병인박해->제네럴셔먼호사건->병인양요->오페르트도굴사건->신미양요)

병인양요(1866)는 프랑스가 병인박해를 구실로 조선과의 통상수교를 시도하였어요 프랑스의 로즈제독의 함대가 강화도를 점령하게 되고 한성으로 진격하려 하였으나 한성근(문수산성), 양헌수(정족산성)부대가 프랑스군을 격파하였지만 프랑스가 퇴각을 하면서 의궤를 포함한 외규장각의 도서등의 문화재가 약탈되었으며 이후 독일상인 오페르트가 흥선대원군의 아버지(남연군)의 유해를 미끼로 통상요구를 시도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더욱 통상수교거부정책이 강화되는 결과를 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오페르트도굴사건(1868) 그리고 신미양요는 1871년 제네럴셔먼호사건을 구실로 강화도로 침입을 하여 초지진 덕지진을 점령하고 광성보를 공격하였으나 어재연이 이끄는 조선수비대에 의해 패배하였으나 마찬가지로 퇴각하는길에 수많은 전리품을 약탈해서 철수하게 됩니다(어재연의 수자기)

 

이후 흥선대원군은 척화의지를 세우고자 척화비를 전국각지에 건립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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