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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story

독립협회와 대한제국

by yhh 2021.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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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관파천 이후 러시아를 비롯한 열강의 이권 침탈이 심화되자 열강에 대한 반발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갑신정변에서 실패한 서재필이 미국에서 귀국하며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우리나라 최고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하게 되면서 서재필, 윤치호 등 자주독립국가 건설을 목표로 독립 협회를 창립하게 됩니다(1896~1898)

 

꾸준하게 고종의 복귀를 요구하면서도 여러활동을 하였는데 러시아가 부산 절영도 땅을 석탄창고 기지 건설을 위해 빌려줄 것을 요구하는 절영도 조차 요구를 저지하며 한. 러 은행의 폐쇄와 러시아 재정고문과 군사교관 철수를 요구하였으며 국민의 기본권과 참정권을 보장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이외에도 민중집회인 만민공동회를 열어 민권 신장을 추구하였으며 헌의 6조를 결의하여 고종의 재가를 받은 관민공동회도 개최하였습니다. 

 

독립의식을 고취하기위해 독립문과 독립관을 건립하며 토론회 강연회를 개최하여 민중에게 새로운 지식과 교양을 보급하였습니다. 원래 독립문의 앞에는 청의 사신을 맞이하던 문인 영은문이 있었는데 그 옆에 독립문을 건립하고 중국 사신을 접대하던 무화관을 독립관으로 개조하였습니다.

 

독립협회는 아관파천이후 고종이 돌아온 후에도 유지가 되었으나 독립협회는 자주 국권 자유민권 그리고 중추원 개편을 통한 의회 설립을 추진하였으나 나라의 체제를 공화정 치로 바꾸려 한다는 익명서 사건으로 모함받아 결국 고종이 군대와 정부가 보부상과 연합하여 만든단 체인 황국협회를 동원하여 강제로 만민공동회를 해산시키게 되고 독립협회 또한 해산되게 됩니다.

 

 

대한제국(1897)은 국민의 열망에 따라 고종이 아관파찬을 단행한 지 1년 만에 러시아공사관에서 덕수궁(경운궁)으로 환궁하게 되고 연호는 광무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며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하게 됩니다. (정말로 뜬금없네요)

 

이후 광무개혁을 실시하게 되는데 구본신참 즉 옛 제도를 근본으로 삼고 새로운 제대를 참고하는 원칙을 토대로 점진적인 개혁을 추진하게 되고 대한국국제를 반포하여 대한제국이 전제정치 국가이고 황제권은 무한함을 강조하며 근대적인 토지소유권 제도를 확립하기 위해 양전 사업을 실시하며 지계아문을 설치하여 토지소유자에게 지계를 발급하게 되는데 이는 러일전쟁으로 지계 발급이 중단되게 됩니다. 후에 일본은 이를 핑계 삼아 10년 국권 피탈 이후로 토지조사사업을 하게 됩니다.

 

황제의 군사권을 강화하기 위해 황제 직속 군사기관인 원수부를 설치하며 군사의 수를 대폭 증강하며 관립 실업학교는 상공 학교와 기술교육기관을 설립하게 됩니다 또한 북간도 지역으로 이주한 교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북간도에 간도관리사를 임명하고 (이범윤)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승격시키고 독도가 울도군의 관할 영토임을 명시하는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반포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독립협회와 대한제국 배경과 광무개혁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참 근현대사 파트는 공부하면 할수록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은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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